99% 가능성과 1%의 가능성 사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99%의 가능성으로 갔다. 설마하는 1%의 가능성은 환경적 변수들이 그 확율을 높여주지 못하고 있었다. 99%의 확신에 따라 나는 내 스스로 최선을 다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실행했다. 그런데 내 마음속에 설마하고 기대하던 1%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.
마치 해머로 머리를 한대 맞은 듯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멍해져버렸다. 너무나 짧은 순간 너무나 많은 변수들 사이에서 순간적인 결정들의 연속이었다. 현실적인 부분을 버리고 계산을 버리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그렇게 결정을 내려왔다. 큰 결정 앞에서 99%의 불확신은 너무나 커져만 갔고 다른 길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.
내 인생은 99%를 쫓아가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. 늘 가능성이 있는 곳을 보고 달려온 고된 인생이었다. 미국행을 비롯해 큰 결정들은 모두 불확실성에도 불구한 도전이고 가치관의 실행이었다.
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. 1%의 가능성을 마음속으로 기대하였음에도 나는 왜 99%의 가능성 쪽으로 향했을까? 생각해보면 이렇다. 당시 상황에서 난 1%를 보고 달려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. 너무나 짧은 순간 많은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만 1%를 보고 달려갈 정도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. 1%를 보고도 달려갈 수 있는 단계까지 가기를 바라면서 달려가는 과정이었다. 더 느끼도 더 알아가고 싶었다. 그 과정의 길에 제동을 건것에 대해 화가나고 혼란스러웠다. 알고보니, 제동을 건 장본인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.
어긋날 수 있는 짧은 순간의 결정들이 기가막히게 잘 맞춘 결정들이라 생각했었지만 한번의 결정은 그렇지 못했다. 나와 상대 모두 1%를 보고 달려갈 수 있는 상황까지 와있지는 못한 상황에서 내가 제동을 걸게 된 것이다.
나의 배려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결국 배려가 아닌 것이었다. 배려는 비겁함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.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덜 고통스럽기 위해 배려가 아닌 거짓된 배려를 한 것 같다. 기다림과 조급함 사이에서 덜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했는지 모른다. 빠르게 해야할건 미루었고 기다릴 수 있는건 조급함에 기다리지 못했다. 너무나 빠른 순간 많은 것이 일어났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. 내 자신이 그 만큼 부족한 존재였던 것이다.
이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나의 인생스승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. 솔직해준 그 사람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. 그리고, 한없이 미안하다. 누군가에게 이렇게 감사하고 미안하게 느껴본 기억이 없다. 그 사람은 날 발가벗겨 놓았다. 난 발가벗겨진 내 모습을 난생처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. 그 어떤 책도 이런 깨달음을 가져다 주진 못할 것 같다. 그 사람은 이미 나에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너무나 값진 걸 안겨주었다.
때론 소름끼칠 정도로 나와 비슷한 면이 느껴지는 사람이다.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. 그런 내 마음은 의심하지 않았으면서도 상대의 마음은 결국 내마음대로 의심했다. 한 순간 난 너무나 약한 인간이 되어 의심하는 비겁한 인간이 되었다. 말과 글은 너무나 무섭기도 하다. 어떤 말과 글도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줄 수 는 없기 때문이다.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뢰와 믿음이다. 난 그걸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. 난 겉으로만 똑똑한척하는 많이 부족한 그런 사람이었다.
여전히 난 상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다. 하지만, 신뢰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며 의심이 얼마나 무서울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느낄수 있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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